나의이야기

내 아쉬움의 흔적들...(2005-6-2)

박부용 2018. 9. 20. 21:53

새벽에 비가 왔습니다.
툭툭툭..창문을 두드리면서 잠깐 일어나 보라고 자꾸 재촉하는 통에
부시시 눈을 떠서 새벽 창 밖을 바라보았습니다.
다들 잠든 새벽 동안 몰래 세수라도 하겠다는 것인지
창 밖의 세상은 끝없는 빗물 속에 고여 있었습니다.
낮 동안 분주하게 숨쉬던 15층 아파트도 어쩔 수 없이
멍하게 서서 그 비를 맞고 있었고
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져지던 거리들도
동그라미를 그리는 물방울들로 덮여 있었습니다.
만물의 영장이라고
세상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
빗방울들은 그렇게 새벽 내내 세상에 내려와
낮 동안 우리가 남긴 흔적들을 지워가고 있었습니다.
빗방울들이 다녀 간 거리와 건물마다에는
내가 남겨놓은 흔적들도 있었겠지요.
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나의 발자국들은 남아 있지 않겠지요.
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나만의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.
이미 오래 전 누군가가 기뻐하며 또는 슬퍼하며 걸었을 거리들이고
어쩌면 아주 조금 전....
누군가가 남기고 간 흔적 가운데에 있는 건물들이겠지요.
무언가를 꼭 얻어야 한다고,
얻고 난 뒤엔 내 것이라고 이름이라도 써둬야 하진 않을까 하고
급한 걸음으로 움직이며 남겼던 내 흔적들이
빗방울들에 쉬이 지워지는 것을 보며
날아가며 슬쩍 자신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새들처럼
어쩌면 나도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... 하는 아쉬움의 흔적을
결국 또 하나 남기고 맙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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